
기술에 뒤처지지 않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기술 앞에서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그 흔들리지 않음은 기술 자체에 대한 자신감이 아니라, 말씀과 기도와 분별에서 나올 것이다.
성도는 단지 최신 기술을 잘 아는 목회자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새로운 플랫폼을 먼저 배우고, 모든 도구를 능숙하게 쓰는 사람이기를 기대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성도는 혼란한 시대 속에서 무엇을 경계하고 무엇을 활용할 수 있을지를 차분하게 풀어주는 목회자를 더 신뢰하게 된다.
시세를 아는 것은 유행을 좇는다는 뜻이 아니다. 시대의 흐름을 분별하고, 그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무엇을 붙들어야 하는지를 아는 일이다. 목회자는 바로 그 역할을 감당하는 사람이다.
역대상에 등장하는 잇사갈 자손은 “시세를 알고 이스라엘이 마땅히 행할 것을 아는 사람들”이었다. 이 표현이 지금 우리에게도 깊이 다가온다.
잇사갈의 사람들처럼
그래서 기술의 시대에도 결국 중요한 것은 성능이 아니라 지혜고, 편리함이 아니라 분별이며,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도구는 달라져도 인간의 마음은 달라지지 않는다.
전도서의 말씀처럼 “해 아래 새 것이 없다”는 말은, 세상에 아무 변화도 없다는 뜻이 아닐 것이다. 오히려 인간은 시대마다 새로운 도구와 구조를 만들어내지만, 그 도구 앞에서 흔들리고 유혹받고 분별해야 하는 본질적인 문제는 늘 반복된다는 뜻에 더 가깝다.
사실 교회는 역사 속에서 늘 변화 앞에 서 있었다. 인쇄술이 등장했을 때도, 라디오와 텔레비전이 등장했을 때도,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보급되었을 때도 교회는 늘 질문을 받았다. 어떤 변화는 경계의 대상이 되었고, 어떤 변화는 선교와 교육의 새로운 통로가 되었다.
변화 앞에서 교회가 붙들어야 할 것
교회가 기술을 도입하는 속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기술을 어떤 마음과 어떤 기준으로 사용하는가일 것이다.
기술이 너무 빠르고 편리할수록, 우리는 종종 중요한 질문을 잊는다.
목회자와 사역자들이 반복적인 행정과 자료 정리에 덜 소모되고, 더 중요한 일에 시간을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설교의 주변부를 정리하고, 교육 자료를 더 풍성하게 준비하고, 소통의 사각지대를 줄이고, 다음 세대가 살아가는 디지털 환경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면 그것 역시 은혜로운 일이 아닐까.
나는 이 변화 앞에서 한 성도로서 두 가지 마음을 동시에 느낀다.
기대와 두려움 사이
최근 몇몇 기독교 기관과 사역 현장에서는 설교와 AI를 함께 논의하는 컨퍼런스와 세미나가 열리고 있다. 설교 준비에서 AI를 어디까지 사용할 수 있는지, 성경연구를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 표절과 윤리의 경계는 무엇인지, 미디어 사역과 다음 세대 교육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접목할 수 있는지에 대한 실제적인 토론도 이루어지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 변화가 앞으로 올 것이라는 예측이 아니라, 이미 시작되고 있다는 현실이다.
이미 검토되고 있는 영역들
이제는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교회와 목회는 이 흐름 앞에 어디쯤 서 있을까. 여전히 이것을 바깥세상의 기술로만 볼 수 있을까. 여전히 목회와는 거리가 먼 문제라고 말할 수 있을까.
목회 현장에서의 현실적인 적용 지점
청년들과 다음 세대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들에게 AI는 낯선 세계가 아니라 이미 손 안에 들어온 생활 도구가 되어가고 있다.
성도들은 이미 일상에서 AI를 사용하고 있다.
성도들의 일상에 이미 들어온 AI
한때 인공지능은 멀리 있는 기술처럼 느껴졌다. 개발자나 기업, 연구소, 혹은 거대한 플랫폼 기업들의 이야기처럼 보였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그것이 교회와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세상이 바뀌고 있다는 말은 이제 너무 흔하다.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고, 사람들의 삶의 방식도 달라지고 있으며, 정보가 흐르는 속도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빨라졌다. 이런 변화는 교회 밖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이미 교회 안으로도 들어오고 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이미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미 시작된 변화
핵심 키워드
오늘의 말씀
이 장에서 가장 먼저 말하고 싶은 것은 단순하다.
그렇다면 이제 교회가 물어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하지만 이 질문만으로는 부족하다. 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나는 이 글이 기술을 권하는 글로 읽히지 않았으면 한다. 동시에 기술을 무조건 두려워하게 만드는 글로도 읽히지 않았으면 한다. 오히려 이미 시작된 변화를 외면하지 않되, 더 깊은 본질을 붙드는 글이었으면 한다.
아직까지(?) AI는 설교를 대신할 수 없다. 기도를 대신할 수 없다. 한 영혼을 위해 오래 마음 아파하는 목자의 자리도 대신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이 목회자의 시간을 조금 더 비워주고, 행정의 부담을 조금 덜어주고, 자료를 정리하고 소통을 도우며, 복음의 전달을 위한 주변부를 보완해줄 수는 있다.
그러므로 문제는 도구의 존재가 아니라 도구의 위치다. 도구가 중심이 되면 목회는 얕아질 것이고, 도구가 제자리를 찾으면 목회는 오히려 더 본질에 집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끝까지 지키고 싶은 본질
교회가 먼저 배워야 할 것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다. 기술을 대하는 태도다.
목회는 시대의 도구를 외면하는 일도 아니고, 그 도구에 휩쓸리는 일도 아니다. 목회는 언제나 사람을 향하고, 말씀을 붙들고, 시대를 분별하며, 공동체를 살리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AI가 이미 들어오기 시작한 시대일수록, 목회는 더 선명하게 목회여야 한다.